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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원

  • 조회 5889
  • 2013.08.25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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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11  19  

 

 

비원 秘苑

 

 

 

운니동 일본 문화원에서 일을 보고 나오니 하늘은 푸르고 화창한 가을의 절정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길 건너 저편에 비원의 돈화문이 눈에 들어온다

발길이 이미 길을 건너고 있었다

 

실로 얼마 만인가

일제가 정원의 의미로 비원이라고 격하한 것을 창덕궁이라고 다시 이름을 세웠지만 나는 어려서 듣던 비원이 정겹다

 

집이 가깝고 늘 지나치지만 서울 사는 사람이 창덕궁 창경궁을 찾는 적이 과연 얼마나 될까

 

위엄 있이 서 있는 돈화문을 들어서니 너른 마당이 펼쳐지고 곱게 물든 단풍과 가을 풍광이 거기에 빼곡히 들어선 궁궐들과 정자를 운치있게 해 준다

계절에 따라 느낌이 다르겠지만 그 오래 전 이루어 낸 건축과 조경의 자연스러운 조화와 그 속에서 느껴지는 편안함과 아름다움은 같을 것이다

 

대학 때 짝과 왠일인가 비원엘 갔는데 고요한 후원의 숲속에서 4명의 서양인이 다가왔다. 느닷없이 “Where are you from?" 했더니 까만 뿔테 안경을 쓴 남자가 ”I‘m from London" 그리고 두어마디 하고는 서로 제 갈 길을 갔다

 

영국식 발음이 귀에 도는데 그 다음날 이화여대 대강당 공연 무대에 클리프 리차드

가 나오는 걸 보고서야 그가 뿔테 안경을 썼던 걸 알아챘다

비원과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클리프 리차드의 어울림은 요새 같으면 핸드폰에 박혔겠지만 그 장면은 내 기억 속에만 있다

 

시선을 돌리니 화려한 치장이나 단청 하나 없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집 한 채가 나온다. 여인의 공간 특유의 사랑스런 낙선재다

헌종이 서재와 사랑채로 썼고 1963년 귀국한 이방자 여사가 1989년까지 생활한 곳이다

 

방자 여사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의 비妃이다

진명여고를 졸업한 손호연 시인 어머니를 1941년 동경으로 유학시켜 준 분이기도

하다 필운동 우리 집에 오시기도 했고 낙선재로 어머니와 방문하여 직접 만드신

칠보 공예를 보여 주신 적도 있다

 

일본의 최고 명문가 출신으로 천왕의 규수로 간택이 되었으나 건강 검진에 대를 잇지 못한다는 판정에 일제가 우리의 왕과 혼인을 시켰으나 아들을 낳게 된다

한참 후 들은 일본명 마사코 여사의 삶의 단면이나 내가 본 그 기품 있는 모습과 태도가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날도 차지는데 시내 한복판이면서 도시와 세상과 동떨어진 ‘비밀스러운 정원’에 들어 와 어머니와 함께 앉았었던 그 방을, 이제는 나만이 아는 그 아름답고 기품있던 광경을 그리움 가득한 눈으로 들여다보는 한 가을의 오후다

 

 

 

 어머니 손잡고

 방자 여사를 뵈었었지

 

 이제는

 관광객과 나만이 기웃거리는

 먼 기억도 새로운

 텅ㅡ빈

 

 

 비원의 낙선재

 

 

 

 

 

 

 


2012  11 17  오후 5시  시인의 핸드폰으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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