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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연의 무궁화'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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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16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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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신의 로 쓰는 컬쳐에세이


 '손호연의 무궁화' 다큐멘터리 

 

 


어머니가 시인인 걸 모르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 일생을 지었어도 한국 팬이 없어서였나 내가 큰 감흥을 가진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일본에 가면 신문들에 나고 1997년 일본 북단 아오모리에 높은 시비를 세우고 더구나 1998년 일본 천황이 궁으로 한 줄 시의 대가로 초청하고 나서는 그들이 나의 소매를 붙들고 울기까지 했다.

그래도 그런가 보다 했다, 가실 무렵까지는.
가실 무렵에야 수 많은 시 중 300여 수를 선택하여 한 권의 한글 시집을 내드리는 것으로 못 다한 효를 한다는 발상을 했다. 그것도 작가가 뽑는 게 정석인 데 편집하고 만드는 내가 뽑았다.

어머니는 조용하고 뭐가 이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법이 없으셨다. 당시 일어도 모르며 대강 설명을 듣고 일대기로 그렇게 뽑았다. 몇 달이면 되는 줄 알았는데 4년이 걸리는 지난한 작업이었다. 몇 번이나 찾아가 번역을 부탁한 조병화 구상 시인이 시의 그 에끼스를 외국어로 바꾼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여 할 수 없다고 했다. 겨우 한 줄의 글인데~ 하며 철 없이 내가 달려들었다.

한 권만 하고는 도로 내 일로 돌아오려던 나는 그 과정에서 파란만장 고단한 일생을 느끼게 되며 일본 독자들이 왜 감격해 하는가를 처음 깨우치게 되었다. 아니 마침내 나도 감동하게 되었다고 말해야 옳다.

비자도 내기 어렵던 시절, 바다 건너 일본 독자들이 사랑해주고 시의 명인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말을 엄마는 한 적이 없다. 집에 우리의 방과 책상은 있어도 엄마의 서재와 책상은 없었고 언제 시를 쓰는 지도 나는 몰랐다.
한국에서 책이 나오자 한국 독자들도 이해해 줄까 어머니는 가슴설레여 했다. 그 순수한 마음이 '소월' 같은 서정시인으로 인정받을 것이라고들 했고 1년 후 2003년 하늘로 거처를 옮기시었다.

그제야 철이 난 나는 미국의 뉴욕으로 시애틀로 인근의 일본 여러 도시로 프랑스로 책을 싸 들고 손호연의 사랑과 평화의 정신을 알리는 강연을 했다.

이 다큐멘터리도 가신 후에야 이홍구 PD와 함께 한 일 양국을 여러 번 오가며 만들게 된다.
사랑하는 조국에 독자가 없었고 이 딸마저 들여다 보지 않았었는데, 생전에 그게 만들어졌다면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동아시아 험난한 현대사를 온 몸으로 살아 온 삶을 돌아보며 얼마나 깊은 감회에 젖으셨을까.



       오로지 한길 만을 걸어왔지요 일생 시를 지으며, 역사는 변했어도

                                                                  손 호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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