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대선 철이 오면 1년이 아니라 대통령의 한 텀인 5년이 빠르다는 생각도 든다.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직도 명확히 누굴 정하진 않았다. 이리 보다 보면 뭐가 터지고 저리 보다 보면 또 뭐가 터지고 한다. 이리 긴 팬데믹도 생애 첨 보지만 시대정신 논쟁보다 양측 헐뜯는 행태에 짜증이 난다. 오죽하면 국민정신 치료비 이야기까지 나올까.
귀국 후 빠짐없이 투표를 했지만 맘에 쏙 들어서 한 적은 없다.
우선 이 작은 나라에서 맨날 우리끼리 만을 놓고 담론 토론 하는 게 맘에 안 든다. 초등학교부터 세계 지도를 펴기만 해도 200 개가 훨 넘는 나라 중에서도 최강대국에 우리가 둘러싸여 있는 걸 곧 알 수 있다.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태평양을 면한 미국이 그것이다. 거기다. 거기다 우리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기도 하다.
지정학적으로 우리는 주위 세계 초강대국과의 관계가 중요하고 그러려면 그들을 알아야 하고 가까워져야 한다. 그러려면 국제감각이 있어야 한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로서는 경제도 세계와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첫째로 리더의 국제감각을 본다. 그러나 지나간 리더들에게 그게 잘 보이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참석하는 G 7 G 20 모임에도 신경이 쓰인다.
요즘은 대선 뉴스 보기를 거의 피하고 있다.
눈에 띄는 사진 하나는 있었다. 용인의 '은퇴한 안내견'이라 했다. 그것을 끌어 안은 후보보다 뭔가 의젓하고 위엄까지 보이는 그 안내견에 눈이 갔다.
나는 반려견이 없고 그 수명 길이도 잘 모르고 있다. 그런데 은퇴를 했다니 그간 여러 해 수고했겠구나 하는 생각과 그 의연한 모습에 가슴이 울컥해진다. 잊었던 캐롤라인 생각이 나게도 했다.
오래 전 워싱톤에 공부하러 갔고 유서 깊은 조지타운Georgetown 대학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오기에 언어학으로 잘 알려져 있어 사회언어학을 택했다. 아름다운 캠퍼스였지만 낯설었는데 곁에 앉은 여학생이 친절했다. 캐롤라인이다. 근데 가만 보니 눈이 떠있는데도 시각장애인이었다. 중학교 때 농구하다 다쳤다고 했다. 많은 걸 알려주었고 가르쳐 주었다. 그 곁에는 안내견이 앉아 있었다. 이름은 잊었지만 누런 색의 그 안내견은 캐롤라인을 늘 인도해 주었다. 한국에서 장애인은 더러 보았지만 안내견을 본 적이 없어 그와 어디든 잘 다니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그 후 그가 먼 앨버커키로 이사 갔고 한동안 나는 한국을 왔다 다시 돌아가며 그를 보러 앨버커키에 내려 그 집에 며칠 머무른 적도 있다. 내게 요리를 해주기도 했는데 곁에는 안내견이 여전히 있었다. 앨버커키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많이 살고 있어 터코이즈 Turquoise 라는 파란 보석을 실버에 박는 반지 목거리 등 세공 제품을 만드는데 그 반지와 아름다운 팔찌를 내게 사주기도 했다.
한동안 연락이 끊기다 그가 하늘나라 갔다는 소문을 들었다. 아 그렇게 갔구나~ 슬펐다. 그가 엄마와 통화하는 걸 한 번 보았었다. '엄마가 도와주지?' 하니까 '내 삶인데 왜 도와줘?' 단호히 그랬다. 미국에선 자녀의 그런 독립정신을 늘 보게 된다. 우리와의 차이다. 그럴 줄 알았으면 그 엄마 전번을 받아 놓을 건데~ 워싱톤에 가게 되면 그와 함께 걷던 거리에서 또 그가 봉사하던 조지타운 동네의 정원으로 가서 그를 생각한다. 착한 그 안내견은 어찌 되었을까도 궁금하다.
신문에 난 듬직한 안내견이 캐롤라인의 안내견과 많이 닮아서 더 그들 생각이 났다. 그 사진으로 내 청춘의 서정적 풍경 하나를 떠올리게 되니 진흙탕 대선 중에도 덕보는 순간은 있다.
나라의 리더를 뽑는다는 건 생각하면 몇 해 동안 그 얼굴을 TV 신문 잡지 유투브에서 줄창 보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끝까지 국민이 존경할 수 있는 리더, 국제감각이 없다 해도 빠른 시간에 학습되어 강대국에 맞설 강한 외교력이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작지만 강한 나라 그게 내 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