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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앞을 걸으며

  • 조회 1828
  • 2021.01.08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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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11  23

   

 

이승신의 로 쓰는 컬쳐에세이

 

청와대 앞을 걸으며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비오는 날에는 동네 산책을 안하는데 그친 줄 알고 우산없이 나왔다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집을 나와서는 일단 멈추어 서서, 어느 쪽으로 갈까,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 날은 무궁화 동산과 청와대 앞길을 떠올렸습니다.

 

그것도 두 길이 있는데 골목으로 걷다가 무궁화 동산을 들여다 보고 길 건너 청와대 쪽으로 가는 것과 경복궁 쪽으로 내려가 경복궁 긴 돌담을 끼고 걷는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최후의 밤을 맞았던 안가가 YS가 들어서자 허물어져 무궁화동산 공원이 되었고 좋아서 가끔 갔었는데, 얼마 전 무궁화 나무가 무더기로 꽉 채워져 답답해졌습니다. 

공원이든 삶이든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그 생각을 하며 경복궁 돌담길을 택했고 '시내 한 복판 이리 운치있는 길을 왜 걷는 사람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로등마다 걸린 꽃소쿠리와 태극기가 바람에 날리는 걸 보며 걸었습니다.

 

바로 앞으로 큼직한 삼각 형태가 언제 봐도 가슴 후련한 북악산을 바라보며 고급진 돌판 보도블럭을 길게 걷다 우편으로 돌면 그것이 청와대 앞길입니다.

 

청와대 대문까지의 그 길은 세계적 기준으로 보아도 좋은 길입니다. 아름드리 은 행나무가 줄 서있고 들꽃도 피어나는 잘 다듬어진 이 길을 걸을 때면 불평하던 세금을 낸 보람도 조금 있습니다. 자주 지나던 백악관 앞길도 생각이 납니다. 

시내의 조잡한 보도블럭과 조경을 떠올리면서 서울 시내 길이 이 정도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늘 듭니다. 

선진국이 아니면 왕궁 앞과 일반 길은 다르더군요.

 

그리고는 푸른색 기와가 보이는 청와대 대문 앞에 서게 됩니다. 

아주 어려서 지금보다 규모가 작았지만 경무대로 들어간 희미한 기억이 있고 가신 후 어머니의 '평화의 시'가 한국어와 일어로 울려 퍼지기도 한 곳입니다. 내가 선 뒤로는 '신무문神武門' 경복궁 북문이 섰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사람들로 그 자리가 몹시도 붐볐었지요. 우리가 자금성이 신기하다고 사진을 찍어댔듯, 내게는 친숙하기만 한 청와대 모습을 찍으며 신기해 하는 걸 바라보곤 했습니다.

 

이제는 늘어선 경호원들만이 그 지점에 섰는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 하얀 철문 안의 대통령 직을 얻으려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한 역사가 있고 성공하여 들어간 이들의 역사도 있습니다. 

 

개천절 같은 날이면 광화문의 데모대가 밀쳐 와 전경들과 몸싸움이 벌어지고 차벽이 서기도 하고, 분수대 앞에는 큰 판을 들고 '억울하니 도와주세요~' 굶으며 외치는 1인 시위가 있습니다.

 

청와대를 떠나 국민 속에 있겠다는 분이 그대로 계시고, 그 우측에 있는 직원쪽 문이 스르르 열리면 북악산 기슭의 울창한 숲이 살짝 보이는데 얼틋 보기에도 대도시 한복판 치고는 최상급 숲입니다. 그 뒷산에선 한강도 보인다는데 MB가 광우병 시위를 보았듯 현 대통령도 거기서 시위를 보았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왜 거기만 들어가면 초심을 잃게 되고 밖에서 수근대는 걸 모르는 것 같을까요.

 

누가 되어도 약속한 공약이 있어 기대가 크고, 시간이 가면 실망이 되어 다음 선거에서 국민은 다른 편을 찍게 되고 그 다음이 되면 다시~  그렇게 반복되는 역사를 주민으로 수 십년 지켜 보았습니다. 

 

누군들 정상에 서면 나라를 바로 하고, 앞서 간 선조들의 헌신으로 이만큼 일구어 놓은 걸 좀더 바짝 선진국으로 올리고 싶지 않을까요. 밤을 지새우며 고뇌하고 분투하겠지요. 이 좁아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의 대표자가 된다는 건 얼마나 무거운 중압감이겠습니까. 지나간 대통령들의 우리가 본 운명과 현 대통령의 그것이 떠오르며 이 앞에 서면 어느 시대라도 동정이 들기도 합니다.

 

반복되는 그 고통과 고뇌를 보면서 이제 어느 누가 대통령에 나오고 싶어질까, 그거야말로 대단한 용기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면서도 이름없던 작은 도시국가에 '이광요李光耀'가 나타나 세상에 내노라 하는 국가가 된 것처럼 우리도 탁월한 인물이 등장하여 획기적 전략과 전술을 세우고 일으키는 변화를 기다리는 마음 또한 간절합니다.

 

선진국의 오랜 삶에서 조국을 바라보며 늘 느끼는 것은 우리같이 작은 나라가 그마저 분단이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인 나라로서, 경제를 위해서도, 국제외교력이 강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나의 소소한 산책 코스 중에서도 유독 이렇게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를 마주하고 설 때면 여러 상념이 들며, 계절 재촉하는 비를 맞으면서도 나라와 후대를 위하여 기도하게 됩니다.

  

 

 

 

 청와대로 이르는 경복궁 긴 돌담길 -  2020 11 서울


 청와대 앞 분수 광장,  2020 가을

 


 

 청와대 앞길

 

 잎 지기 전 굵은 은행나무 가로수

 

 2020  11 11  맑은 가을 날

 


청와대 대문과 바로 마주하는 '신무문' 경복궁의 북문



직원들 문으로 보이는 잎진 숲


청와대와 마주하는 경복궁 담의 담쟁이

 


원래 경복궁 안이던 이 앞길에 벚나무 거목이 줄 서 있어 봄꽃이 볼만하다



청와대 앞길서 서편으로 길게 누인 인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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