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내가 다니고 걷는 지역은 서촌 북촌 광화문, 멀어야 시청 앞이다. 미국의 오랜 삶에서 그리워하던 서울도, 생각하면 그 구역이었다. 그 지역은 경복궁 비원 덕수궁 청와대를 포함하기도 한다.
미국서 귀국해 보니 많은 이웃이 강남으로 가버렸고, 300년 넘는 커다란 한옥에 어머니는 추위에 떨고 있었다. 친한 동창들도 모두 그리 이사했고 한 달에 한 번 보는 모임에 가끔은 나를 배려하여 이 지역에서 모여주기도 한다.
강남은 되도록 가지 않으려 하지만, 어쩌다 간다해도 아파트 숲을 헤치고 돌아오는 길에 시청이 저만치 보이기 시작하면 마침내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된다.
시청 앞을 지나며 탁 트인 세종로 끝으로 광화문, 그 뒤로 우람하고 짙푸른 북악산과 북한산이 일직선으로 보이게 되면 살던 워싱톤에서 막 귀국하는 듯 새롭고 가슴이 뭉클해진다.
강남서 1시간 여 함께 달린, 다시는 안 볼 택시 기사에게도 그 순간의 느낌을 말해 준다. 그러면 그는 '그렇지요. 여기가 사람사는 데지요~' 추임새를 넣어준다. 아부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으나 그 대응에 안심이 된다.
거기에는 한동안 자주 걷던 청계천도 있지만 그 옆에 프레스 센터 건물이 있다. 정부에서 워싱톤에 있는 나를 3년 여 끈질기게 설득하여 2년 넘게 일했던 '한국방송위원회'가 그 안에 있었다. 국제협력실장인 나의 방은 14층인데 덕수궁의 멋진 경관이 내려다 보였다. 강원용 위원장 때였다. 국제 협력 일과 KBS MBC 등 메이저 방송국의 국제 협력실을 관할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독일 통일의 촉매제가 되었던 독일 방송의 주요인사들을 초빙한 큰 규모의 국제회의였다.
내가 오기 전 한독 협의 중, 독일 측이 화가나 어그러져 저 바닥으로 내려간 것을 다시 일으킨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모두들 나에게 만들어 내라 압박을 했고 국제전화 여러 통에 마침내 아슬아슬 이루어내니 '9시 뉴스 메인 앵커와 이승신 토크쇼 스케줄로 어렵게 모셔왔는데 이제보니 외교장관 해야 되겠구먼~' 카랑카랑한 위원장의 목소리였다. 거기를 지날 때면 떠오르는 장면들 중 하나다.
그 앞으로는 시청 구 건물이 버티고 섰다. 어려서부터 봐 온 건물이어 정겹기만 한데, 그 뒤를 감싸고 있어 월드컵을 상징하는 듯한 신 건물은 아무리 보아도 정이 들질 않는다.
그 앞에 서면 지난 여름 갑자기 간 박원순 시장이 떠오른다. 서촌 마을을 좋아했고 어머니 가신 후 손호연 장학재단과 아름다운 재단을 연결했으면 하여 어머니를 뵌 드문 사람 중의 하나였다. 여야의 대선후보로 말이 돌아도 정치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말한 분이 정치에 들어간 것부터 이상하더니 허무하게 가고 말았다.
시청을 바라보자면, 우측으로 길건너에는 '성탄제' 시로 유명한 김종길 시인의 시비가 서 있다. 어머니 시인의 시에 감동하여 나를 여러 번 찾아 오셨고 내 시집에도 글을 적어주셨다. 그 분도 가셨다.
다시 그 우측으로 10층인 삼성화재 건물이 나온다. 전에는 삼성본사로 그 길에서 가장 높았었는데 이제는 양켠 건물이 높아져 작아 보인다. 강남도 제대로 없던 시절, 시내에서 눈에 띄던 건물로 삼성전자가 거기서 시작되었는데 그 건물을 바라보면 엘리베이터나 로비에서 마주치던 이병철 회장의 눈빛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 2층에 당시 서울에 생긴지 얼마 안된 미국은행 '체이스 맨하탄 뱅크'가 있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들어가기가 300대 1, 제일 어렵다는 소문만으로 인터뷰 면접을 보고는 들어가 일한 곳이다.
6층 삼성전자 총각들이 흘끔흘끔 2층을 보러 왔는데 후에 보니 체이스 은행 연봉이 그 세배가 넘었었다. 9달이 되기 전 미국 유학을 떠났지만 지금도 OB 모임에서 보는 그들은 그후 시중 은행장을 지낸 그 분야 일류들이다.
지난 봄 참던 허리 수술 후, 여름에 걸어내려가 오랜만에 시청 앞에 서니 초록빛 잔디가 유난히 눈부셨고 만감이 서렸다. 왼켠으론 덕수궁 뒤로 붙은 다니던 덕수 초등이 떠오르고 앞으로는 시청, 그 뒤로 미국서 초빙되어 일한 건물, 우편으로는 사회생활 첫 발을 디딘 곳이 보여 지난 시간이 영화처럼 흐르며 가슴이 뭉클했었다.
이 겨울 저녁 무렵 다시 가니, 험난한 이 세상에서도 극히 험난했던 2020년의 크리스마스 추리가 서고 'Merry Christmas' 축하 메세지가 반짝이며 흐르고 있다.
그런가 하면 거기엔 광화문서부터 파헤쳐놓은 어마어마한 공사가 진행 중이다. 11년 전에도 익숙하고 정들었던 육중한 은행나무들이 갑자기 다른 데로 사라져 버려 볼 적마다 섭섭인데 다시 또 어떠한 광경이 펼쳐질지 심히 걱정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서 있는 오래 된 플라타나스 수십 그루도 곧 베어진다고 한다. 집 가까이 사직공원의 우람한 5백여 년 나무가 베어나가던 생각이 난다. 아름답고 정든 한옥 집이 길로 헐려나간 것도 속상했으나 살아있는 생물이 단칼에 베어나가는 거엔 가슴이 미어진다.
이 지역은 대한민국의 핵심으로 국민 가슴에 자부심을 주는 곳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고향이기도 하다.
살아 본 워싱톤 뉴욕 파리 도쿄, 세계 그 어느 수도에도 이렇게 큰 산을 낀 장엄한 경관은 없다. 제발 선진국의 올드타운처럼, 정든 광경을 우리 마음에서 도려내버리지 말아주기를 바라고 또 바라게 된다.
성탄제
金宗吉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들고 돌아오신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며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 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聖誕祭 밤이었을 지 모른다 어느 새 나도 그 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 반가운 그 옛날의 눈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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