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갑자기 바뀌어진 삶의 형태로 모두가 갑갑해 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자유로이 떠나던 여행입니다.
여행이 우리를 떠나버린 건지도 모릅니다.
저도 해외의 긴 생활로 귀국하고도 자주 떠났는데
가까워서 수시로 간 교토를 못 가본지도 일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얼마 전 다녔던 그 곳의 동지사 대학, 그 옆에 살던 집과 동네가 눈에 어립니다.
긴 줄 선 후타바出町ふたば 떡집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내가 살던 동네 데마치出町
서울서 태어나 살았으니 정이 들었고 워싱톤 유학가서 살았던 것도 20년 가까이여 정이 많이 들었지만, 얼마 전 교토에서 공부하며 학교 근처에 살게 된 동네도 꽤 정이 들었다. 졸업 후에도 교토에 가게 되면 아무리 좋은 명소를 돌아보고 짧은 시간임에도, 살던 동네에 가보고 싶어지는 걸 보면 그걸 알 수 있다. 그렇게 버릇이 되었다.
첨에는 낯설었다. 동지사同志社 대학에서 걸어 10 분 거리여 잡았으나 집이 좁았다. 한국보다 몇 배 넓은 땅의 나라에, 대신大臣(장관)이 18평에 산다는 이야기 등 일본사람이 작은 공간에 산다는 건 익히 들었었다. 그들의 겸허요 삶의 우선순위가 우리와 다른 면이겠다.
공부하러 왔다는 걸 늘 상기하며, 대학 도서관이 한 밤에 닫으면 집으로 돌아와, 벽 하나가 창인 걸 와락 열고 땅바닥에 늘어 놓은 열 두어 개 화분의 꽃색을 조화롭게 바꾸어 주는 것이 유일한 기쁨이었다. 사진을 찍어놓지 않아 아쉬우나 내 머리 속엔 지금도 그 사랑스러움이 있다.
그런데 그 위치에 살아서 좋은 것이 꽤 있었다. 우선 나오자마자 데마치出町商店街 전통시장이다. 신선하고 값이 싸 먼 곳에서도 찾아오는 곳이다. 시장 안에 큼직한 수퍼가 두 곳 있어, 여기는 이게 유리하고 저 곳은 저게 좋고 싸고를 알게 된다.
과제가 많아 귀한 시간, 몇 군데 학교 식당에서 주로 드나 어쩌다 저녁을 집에서 하게 되면 현미에 두어 종류 콩을 섞어 누르고, 없는 게 없는 수퍼에서 유바 두부 스시 사시미(회) 치즈 신선한 야채 과일들을 산다. 한국 나물도 만들어 팔고 있다.
그 중 내가 제일 누린 것은 일본 사람들이 고급 생선으로 여기는 도미를 회뜨고 남은 머리와 살을 붙쳐 꽤 되는 양이 450엔 정도, 일본 기준으론 거의 거저인데, 무를 썰어넣고 연한 일본 된장을 조금 풀면 싱싱하고 정말 맛있는 도미국이 된다. 그걸 끓여 친구나 학생들에게 대접하면 최고급 요리로 감격해 했다. 추억이 아까워 그 수퍼 멤버십을 아직도 지니고 있다.
그 안에는 한방이 있어 기력을 더해 준다고 콘설팅을 하고 있고 서점도 있다. 우동집이 있고 고등어로 만든 사바 스시(초밥) 로 이름나 줄 서는 식당도 있다. 나는 일반 스시와 사시미를 좋아하나 시큼한 사바 스시만은 안들게 되는데, 그걸 유난히 좋아하는 서울의 한 지인은 내가 알려 준 그 집을 가기위해 교토로 가기도 한다.
시장길 끝을 나오면 길가로 다시 상점이 이어지는데 그 중 하나가 그 유명한 후타바ふたば 다. 교토 뿐아니라 전국에서 와 매일매일 줄을 서는 집으로, 내가 살던 동네에서 제일 유명한 곳이다. 1899년 창업하여 교토를 대표하는 모치(떡) 점 데마치 후타바出町ふたば 는 창립자가 고향인 이시카와 괌츠의 마메모치豆餅 (콩떡)가, 수도인 교토에 정착되길 바라며 시작한 게 '명물 모치名代 豆餅'로 명성을 떨치며 백년 넘어 사랑을 받고 있다.
꺼먼 콩이 툭툭 박힌게, 만드는 걸 직접 눈으로 보는 것과 엄청나게 긴 줄을 보는 것이 맛을 더해 주는데, 집에서 겨우 몇 걸음 걷는 그 집에 나는 겨우 세 번 줄을 섰었다. 그것도 폭우가 몰아쳐 줄이 적을 때였거나 귀한 선물을 하고 싶은 때였다. 일년 내 여러 겹 둘러 선 걸 새치기 할 수도 없고 공부로 시간이 되질 않은 때였다. 그걸 보면 2호 점을 세울 만도 한데, 그토록 역사 깊은 집에 그런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후타바ふたば 행길 건너에 있는 찻집도 줄을 선다. 단팥죽과 떡 등 몇 가지를 콘에 고물고물 담아 주는데 색과 모양도 좋지만 속의 소프트 아이스 크림 맛이 기막혀 마음에 달콤함이 필요할 때면 받아든다.
그 집을 지나면 외부 땅바닥에 화분이 죽 놓여져 있어 내려다 보며 자꾸 사고만 싶어지는 꽃집이 나오고, 거기서 눈을 들면 바로 앞 가모가와鴨川 강이 보인다. 데마치出町에 살면서 마음으로 가장 의지한 곳이다. 향수에 외로움 원통함 공부의 벅참이 몰려 올 때 나는 그리로 뛰어갔었다.
수십 키로 이어지는 그 강은 폭은 좁지만 자연 자체로 푸근한 마음을 준다. 교토에서 '가장 데이트 하고 싶은 곳'으로 꼽히는 곳으로 연인이나 아가와 함께 하는 젊은 가족이 보이고 노년이 보인다. 봄이면 양 켠에 오래 묵은 벚나무에 꽃이 길게 연이어 구름처럼 피어나며 사이사이 연둣빛 버들 잎이 늘어지고, 철따라 꽃과 풍광이 변하는 그 강을 따라 걸으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교토에 볼 곳이 많아서인가 가모가와 강가에 관광객은 보이지 않는다.
도시 속 강은 좋은 것이다. 집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강이어서도 좋았다. 저 편으로 동양화처럼 여러 산이 겹쳐 보이는 평화로움을 보며 걸으면, 다음 날 서울의 소송 건으로 하루 가야 하는데 가고 싶지 않던 날도 있었다. 오리강鴨川 이름답게 예쁜 오리들이 노닐고, 하늘에선 반지르르 윤기나는 까마귀와 솔개가 유유히 날고 있었다.
강가에는 BonBon 이라고, 스프 프렌치 토스트 등 간단한 음식과 차가 있어, 학교가 시작되던 초기엔 방과 후 프렌치 토스트를 들며 거기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영화 로케로 명성이 있다는데 커다란 창으론 하늘과 강, 그 넘어론 8월 15일 일본판 추석인 오봉날 한 밤에 불을 붙치는 큰 대大자가 새겨진 산이 맞바로에 보인다.
아침을 급히 들고 백팩을 메고 8시 반 등교 하는 길 10여 분, 집에서 골목을 나오면 왼편으론 가끔 가는 카레라이스 집이 있고, 우편으로 돌면 길 건너 오랜 세월 천왕이 살던 고쇼御所의 긴 담 위로 키큰 나무들이 보이고, 내가 걷는 우편 길로는 전구 등 자잘한 걸 살 때면 사춘기 딸 이야기를 하며 정겹게 대해주던 아줌마 철물점과, 하교 길에 고급진 앙빵(단팥빵)을 사들던 우아한 베이커리가 나온다. 조금 더 가면 머리를 잘라주던 명랑한 청년의 미용실이다. 서울에선 한 달에 한 번이, 그 곳에선 두 달에 한 번을 들리던 곳이다. 그리곤 동지사 여자대학 붉은 벽돌 건물이 연이어 나오고 그리로 들어가 빠른 걸음으로 좀더 걸으면 동지사 대학의 유서 깊은 정문이 나온다. 150여 년 전 일본이 존경하는 니이지마 조新島襄가 세웠고, 흠모하는 윤동주 정지용 우리 국민시인의 시비도 서 있는데, 두 분이 1940년 대 드나들던 그 대문을 들어서면 정신이 버쩍나며 자세가 곧추 세워진다. 시인의 시비 가까이, 나의 첫 수업이 있는 코후칸弘風館 교실의 건물로 달려가면 거목이 많은 아름다운 그 캠퍼스엔 유난히도 밝은 햇살이 쏟아졌다. 그렇게 가슴 뭉클한 매일이 시작되었었다.
귀국 후에도 교토에 가게 되면 대학은 물론, 살던 그 옆, 데마치出町로 가서, 아오모리 사과를 자주 사던 과일집 여주인과, 직접 만든 디저트가 사랑스럽고 맛나던 찻집 주인, 키츠네(유부) 우동을 만들던 우동집 부자父子, 선 글래스 가게 주인 등 동네 사람들과 반가이 인사를 나눈다.
인생이 여정이라면 그 여정 한 코너에서 만났던 정겨운 사람들로 따스한 마음도 받았지만, 한국을 가본 적 없고 강코쿠韓國라면 김정은을 떠올리는 이들로, 그들에겐 내가 한국이기에 크게 생각하면 한일교류가 되는 셈이다.
그들의 마음씀 하나하나와 표정이 나에게 일본의 인상으로 새겨졌다면, 나는 그들에게 한국의 인상이요 거울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모치(떡) 점 데마치 후타바出町ふたば -교토
검은콩 박은 후타바 명물 마메모치 사람 머리만한 둥근 무 - 교토 데마치 시장
아모모리 産 사과 - 데마치 시장
데마치 시장 속 유명 사바스시 (고등어 초밥)
가모가와 강 앞의 BonBon 카페
방에 늘어 놓은 저녁식사
교토 삶과 공부를 어이 헤쳐 나가나~ 하던, 가모가와押川 교토 201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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