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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장군 편지

  • 조회 1774
  • 2020.06.24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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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군님께 드리는 편지

 

6 25  70주년 기념일이 다가오자 생존한 참전용사들 인터뷰가 지상에 실리고 있습

니다. 그 중에 카나다 출신 빈센트 코트니 씨 Vincent Courtenay (86세) 가 눈에 띕

니다.

 

70년이 되어도 16세에 참전했던 피비린내 나는 그 공포와 두려움의 전투를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폭탄이 터지면 지구 전체가 흔들렸고 참혹 그 자체였던 한국 쪽을

전후 수 십년 바라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미국에 살 때도 그런 이야기를 더러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전쟁 경험이 없는 저로선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존경하는 명장이 하나 있는데 바로 백선엽 장군입니다.

 

전쟁 당시 미군은 '믿을 수 있는 한국군 파트너는 백 장군' 한 분뿐이라고 했습

니다. 다부동 전투에서 대구로 진출하려던 북한군을 물리친 것을 본 미군이

그의 진가알게 된 것입니다. 미군 전체에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미국에 몸소 가셔도 그러하고 주한대사, 한미 연합사령관, 미 8군 사령관 등이

부임하면 백선엽 장군께 가서 무릎꿇고 인사드리며 '존경의 진심'을 표합니다.

 

현충원 안장으로 왈가왈부 논란하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올 해 설에 '백선엽 100년의 대화' 신문 전면 인터뷰 3 번 실리고는 그 1월부터 입원

에 들어가셨고 벌써 6 달 째입니다.

코로나로 면회가 일체 안되는 장군님께 저는 편지를 썼습니다. 미국서 온 따님

대신 읽어드렸고 반가워 하셨다고 합니다.

 

지난 봄 저의 기도와 심정은 여러 번 그 분께 들은 6 25의 이번 70주년을 넘기셨으

면~ 이었습니다.

 

곧  그 날입니다. 

 

우리는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님'을 평안히 보내드려야만 합니다.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  - 1950

 

 

 

 

 

 꼭 아버지만 같은 사랑하는 백선엽 장군님

 

 

입원하셨다고 하여 놀랐으나 걱정하는 대신 장군님을 태어나게 해주시고 나라를 구하게 해주시고 늘 곁에 계시어 눈동자같이 지켜주시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나라를 구하신 전쟁영웅으로만 알았지 저의 이윤모 아버지와 평양사범 동창인 줄은 몰랐는데 13년 전 처음 뵙고 다부동 전투 이야기는 물론, 2년 선배되는 제 아버지를 세세히 기억해 주심에 살아오신 듯 정말 놀라고 기뻤습니다.

 

매번 인사차 들린 거였는데 뵈면서 훌륭한 그 정신력과 탁월한 애국심에 크게 감동하여 저도 모르게 몇 번 글로 기록하게 되었고 3 언어로 세계로 나가서 백장군님에게 감동감격한 수많은 독자들의 답글도 받았습니다.


지난 해에는 동경서 NHK 방송사 일본 간부를 만났는데 백장군님께 감동이라고 꼭 안부 전해 주십사는 인사도 받았습니다.

 

아버지를 좀 닮고 그리워하는 이 딸은, 나라가 잘 되어야 한다는 늘 애국심 넘치는 장군님 말씀과 함께 이윤모 선배께서는 여러 분야에 정말 뛰어나셨고 그리고 뛰어난 부인을 만나 그 사랑의 열매가 바로 이 선생이지 ’ 부모님 일생의 역사를 알고 계시며 제게 힘 주시려는 모습에 감격하여 손을 잡아주셔도 눈물지었고 장군님이 살아계신 아버지 같이만 생각되어 안심이 되었습니다.

 

삶의 바른 길을 늘상 일러주시고, 해방 후 출생이어 일어도 잘 모르는 사람이 일본 도시샤 대를 최근 졸업한 것에 매번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것도 마음의 큰 자산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장군님 어머님께서 어린 아들을 끼고 교육시키려 강서에서 평양까지 먼 길을 걸어서 옮기신 그 교육열과, 졸업 후 군인학교 가겠다는 아들을 위해 당시 큰 돈인 평양사범의 학비 5백만원을 바느질로 갚으며 헌신하신 그 이야기에 깊이 감동되었고 온 국민이 전쟁영웅으로 군인으로 알고 있는 장군님께서 평양사범의 영향으로 하신 말씀~

 

군인으로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군사전략이 능란해서가 아니었어. 휴머니즘, 인간에 대해 더 진실되게 더 깊이 이해하려 했기 때문이야. 평양사범 다니는 동안 독서를 참 많이 했고 신문도 많이 보았지. 그러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것일까를 참 많이도 생각했어. 그러면서 세계를 보는 눈이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을 느꼈지. 대한민국의 미래 후손도 그런 자각과 세계관을 가지길 바란다  는 그 말씀에도 감격했습니다.


100세에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늘 공부 연구하시는 모습이 진정 감명입니다.

 

                ‘동아시아 끝자락에 살아 온 나, 오로지 평화만을 기원했네’

 

어머니의 이 시처럼 동아시아 끝트머리 이 작은 나라에서 동족끼리의 싸움에 앞장 서신 것부터 고비고비 파란만장의 기막힌 삶을 살아오신 장군님. 저희는 장군님의 목숨 건 그 용기와 헌신 덕으로 자유로운 나라에서 평안히 살아왔습니다.

 

김일성 사무실까지 쳐들어 갔던 장군님께서는 김정은을 이기는 길은 싸우는 것 밖에는 없다고 하십니다. 지금 겪는 나라의 진통이 더 좋은 길로 나아가기 위한 밑거름이라 믿고 장군님과 저의 부모님이 걸어오신 그 길을 따르겠사오니 평안한 마음으로 한 번만 더 버티어 주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그 전쟁이 어느 새 70년이 되었습니다.

전쟁의 하루하루 매 순간순간을 세세히 기억하고 계시는 장군님.


지난 해 6 25 적에 장군님과 참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는 저도 허리로 고전하여 맥아더 장군과 악수하고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만나시는 사진이 붙어있는 전쟁기념관 사무실에 언제라도 오라시는데도 못 가 뵈었으나, 곧 좋아져서 장군님 뵈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부디 자애自愛하시고 대한민국과 저희를 곁에서 더 지켜봐 주시기 간절히 기도합니다.

 

                                       손호연 이승신 모녀시인의 집

 
                                                  이승신 드림  

 

 

 


이 편지를 미국서 온 큰따님이 읽어 드리다  - 2020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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