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네의 집 '엔도쿠잉' 입구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네노미치ねねの道 사람들
기온衹園이 오래된 동네이면서 명동같이 상점도 많은 교토의 대표적 관광지라면, 거기서 멀지 않은 히가시야마東山는 무언가 품위가 있고 고급스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다.
거기에 역사의 냄새가 잘 배인 길 하나가 있는데 그것이 네네노미치'ねねの道'다. 그 길은 언제나 세계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매력적인 길이나 세계인이 그 길로 몰리는 이유는 무엇보다 거기에 큰 터를 차지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집인 고다이지高台寺가 있기 때문이다.
고다이지高台寺는 일본 최초로 천하통일을 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죽고 그 부인이 남편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 지은 집이다. 여성이 그런 스케일로 건축한 것이 처음이어 '세계 최초의 여성 건축가'라고도 불리우는데 그녀의 이름을 따서 '네네의 길'이 된 것이다.
내가 그 길을 알게 된 것은 거기에 있는 료칸旅館 리키야에 머물고서 부터다. 동지사대까지 가게 될 건 상상도 못 한 때에 교토에 며칠 가게 되면 그 곳에 머문게 10 년이 넘는다.
네네노미치 선상에 있는 리키야의 열린 문을 들어가면 집 안 첫 방에 오까미女将おかみ (료칸의 여주인)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일본의 료칸이 호텔보다 훨씬 비싼 것은 아침 저녁 식사가 나오고 이불을 펴고 개주는 등 서비스가 대단하기 때문이다.
방 열개의 리키야는 하던 그 서비스를 멈추고, 깨끗한 다다미 방만을 제공하여 12.000엔이었다. 아주 좋은 위치에 방마다 정원이 내다 보이는 거에 비하면 착한 가격이다. 그것도 내게는 만엔에 해준 것은 자주 가기도 했지만 한창 '겨울연가冬のソナタ'가 일본서 인기를 끌 때에 자기가 얼마나 욘사마에 반했는지를 말했는데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후에는 이병헌으로 바뀌기도 했다. 한류가 시작할 무렵이어 나로선 기분좋은 일이었다. 그러던게 그 후엔 중동인들에게 몇 배를 받고도 방이 없어 동지사대 가까이 있는 호텔로 옮기게 되었으나 그 오까미와 직원들과 정이 들었다.
2011년 일본 대재난이 났을 때는 쓰나미 피해지역에서 멀고도 먼 교토에도 일년 넘어를 관광객이 오지 않아 택시가 그 길에 길게 줄서 있었고 리키야 료칸 손님이 나 뿐인 적도 있었다. 당시 NHK 아사히 산케이 신문에 나의 시와 기사가 나고는 독자들이 다른 시도 보여달라는 문의가 신문사로 쇄도한다고 하여 여러 분들과 협력해 일어로 책을 2 권 낸 때였다.
하루는 저녁에 리키야에 돌아오니 편지가 놓여 있는데 그 책을 읽고 만나고 싶다고 쓰여져 있었다. 네네노미치는 상점이 몇 안되는데 가보니 교토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교양있어 보이는 그 여성은 내 책에 감격했다며 고다이지 이사로 봉사하는데 기회가 되면 거기서 강연을 해줍사 했다. 고다이지와 엔도쿠잉 네네의 집과 미술관의 입장권도 주었다.
한 번은 곧 귀국이어 공항으로 가야하는데 핸드백에 지갑이 보이질 않았다. 그 옆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했고 두 군데 상점을 들린 생각에 뛰어가 보았으나 안보여 낭패가 되었다. 서점의 무라카미村上씨에게 그 말을 하고 서울로 왔는데 며칠 후 그녀에게서 소포로 지갑이 왔다.
일본 가기 50여 년, 여러 해 전 동경에서 지갑을 흘린 한 시간 후 파출소에서 캐쉬 카드 고대로를 찾았었고, 교토에서도 그렇게 찾게 되니 거의 전 국민이 정직해야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무라카미씨의 신고하고 가서 찾아오고 보내준 그 지극정성에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라쿠쇼洛匠 찻집도 거기에 있다. 그 길에 가로수를 세우는 등, 대를 이어 마을을 위해 좋은 일을 하여 할아버지 비석도 길에 세워져 있지만 그 집 연못의 팔뚝 4배가 넘는 비단잉어錦鯉にしきごい가 펄떡이는 걸 보러 시간만 나면 간다. 정말 잘 생기어 비단잉어 중에 왕족으로 보인다. 여주인은 나만 보면 한국에서 작가가 오셨다며 그 집의 명물인 와라비 모치떡과 차를 대접해 준다.
고다이지 건너 편은 엔도쿠잉圓德院 네네가 살던 집인데 커다란 고다이지에 비해 겸손하나 사랑스런 곳이다. 그 주변 터에 엔도쿠잉이 세를 준 상점이 몇 있다. 녹차로 만든 녹빛 모밀국수와 녹차 아이스크림이 맛난 집도 있고, 기념품 집 주인도 늘 반겨주나, 붓과 메모지 시키시敷紙 (시를 쓰는 단단한 서판화)가 있는 한 평도 안돼 보이는 상점을 자주 들린다. 그는 돌로 된 도장에 이름도 근사하게 새기며 유식하다. 가끔 서울서 가져간 김과 김치를 주기도 한다.
거기엔 인력거들이 서 있어 고도古都의 흥취를 더해 준다. 타는 것도 좋으나 남이 타는 걸 바라보는 것도 흥미롭다. 인력거인은 좁은 골목 속 제일 오래 된 빙수 집 등, 몇 백 년 된 곳의 스토리도 들려준다. 그렇게 낯익힌 인력거인과도 곧잘 인사를 나눈다.
길이 끝나는 곳에는 내가 좋아하는 더 소도The Sodo 레스토랑이 있다. 이탈리언 식으로 근대 유명 화가의 아주 운치있는 2천 평 집인데 정원도 맛도 특별하여 누구나 좋아하는 곳이다. 예약한 사람만 들여보내 주는, 큰 대문 앞에 예약장부를 든 두 사람과도 서로 반긴다.
그렇게 교토를 가게 되면 히가시야마東山 네네노미치ねねの道 로 가 20 여년 그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있다. 4백 년 전 고다이지高台寺를 짓고 엔도쿠잉圓德院에 살았던 네네ねね의 실물은 보지 못하지만 그의 한참 후손인 그들을 보는 것이다.
오래 전 처음 동경에 가서는 아버지 어머니의 동창과 지인들을 알게 되었다면, 이제는 나의 동창들, 대학 관계자들, 주일에 다니던 교인, 살던 동네 사람들과 네네노미치 사람들, 교토 시장市長으로 교류가 늘어났다. 일어로 가는 나의 컬쳐에세이로 그들에게 현해탄 넘어 안부도 전하고 있다.
개인대 개인으로 보는 것이지만 생각하면 그들에게는 내가 한국이요, 내게는 그들 하나하나의 마음과 자세와 생각이 일본인 셈이다.
네네의 길 -교토 히가시야마 2018 4 6
'네네노미치' 길 이름을 새긴 돌판
리키야 료칸 입구 - 네네노미치 교토
락쿠쇼의 정원 연못 - 네네노미치 2019 4
엔도쿠잉 초입의 늦가을 가레산수이 정원 - 네네노미치 교토
엔도쿠잉圓德院의 속 정원 - 교토 2017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