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이웃 나라임을 인정해야 한다
한일관계가 이 지경이 되도록 많은 전문가와 일본통 외교관들이 바른소리 쓴 소리를 쏟아내지 않은 건 아닙니다. 예견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실제는 미국통이지만 일본통이 어쩌다 되어버린 저도 말로 글로 보태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안보나 대북관계를 시도할 때에 '재팬 패싱'은 절대 안된다고 누차 말했습니다.
본격적으로 걱정하게 된 건 지난 겨울입니다.
미국 한국에서 많은 TV 프로그램을 만든 저는 그래서 TV를 잘 보질 않는데, 지난 해 다쳐 입원하며 그 방의 유일한 오락거리인 벽걸이 TV를 보게 되었고 마침 그때 동계올림픽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개회식에 우리 대통령을 많이 비추었는데 바로 뒤 김영남 김영철 김여정을 돌아보며 신경쓰느라 멀찌감치 혼자 앉아 있는 아베 수상에게 눈에 띄는 악수도 눈길도 주지않은 걸 보며 걱정이 되었습니다. 실제로는 모르나 화면에 비추인 거로는 그랬습니다.
정상의 권위임에도, 그도 인간이어 전혀 서운해 하지 않을 것 같지는 않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 무시와 방치가 계속되어, 기회있을 때마다 '내가 아는 일본사람은 작은 것에 마음을 써주면 그 은혜를 잊지 않는다. 남북관계에 열을 다할 때도 미국 중국 외에 일본도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선진국의 정상들이 일본 수상을 만나려 줄을 서는데 세계에 딱 한 나라만이 일본을 우습게 본다' 라는 우스개 소리를 더러 듣습니다.
그것을 일본이 몸으로 느끼게 돤 것입니다.
사드로 중국이 큰 소리치니 우리 정상이 꼼짝 못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여러 해 전 삼성이 세계 1등으로 올라서자 그 임원이 '소니가 삼성을 도저히 따를 수 없다고 말했다'며 으시댈 때에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벤치마킹을 했으며 자체 발명 하나가 없었는데 원하면 반격할 수 있는 그들의 저력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자산업이 세계에서 앞서 가다 우리가 배운 것으로 그들의 전자산업이 내려가자, 드러내진 않았지만 일본인들이 속으로 씁쓰름해 하는 마음이 분위기로 공기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올 것이 왔다는 생각입니다.
이 소용돌이에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봅니다.
더 크게 보지 못하는 일본을 생각하면 답답합니다.
침략한번 못해 본 선량한 민족에게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켰고 곧이어 정유재란도 일어났습니다. 동양 평화를 이룬다며 1894년 청나라와 조선에서 싸웠고, 조선을 먹으려한다고 1904년 러시아와 싸워 이기고는 을사보호조약 후 도리어 한일합병을 했습니다.
그렇게 35년간 이 나라를 점령해 언어와 의식을 말살하려 했습니다. 남에게 절대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민족이 그런 폐를 끼쳤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폐를 끼친 건 무엇이고 그들이 분개하는 건 무엇입니까? 기껏 강제징용 배상판결, 위안부 합의 파기입니까? 사과를 이미 했다는 건가요?
해방 후 태어난 저는 일본 역사도 일본도 배운 적이 없어 최근 일본 대학에서 공부를 좀 했습니다. 2천년을 이어 온 양국의 깊은 역사와 친밀한 인연에 정말 놀랐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그건, 양국이 그런 서로의 역사를 너무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이 사랑한 한국시인 어머니는 일상이 조용했습니다. 생전, 일제 강점기의 고통이나 어려움 등의 원망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1999년 동경 모교대학의 백주년 기념에 하신 특강 원고에서 이런 글을 발견했습니다. '강연이 다하자 서울서 함께 졸업한 소학교 일본 동기 동창들이 다가와서는 예전에 잘못한 걸 사죄하려 먼 곳에서 왔다며 공손히 절을 했다. 차별당했던 그들에 대한 수십년 전의 의식이 눈녹듯 녹아내리며 그간의 민족대립도 활짝 문을 열게 된 듯한 순간이었다'
어머니는 용서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런 분 마음에도 그런 응어리가 내내 있었다는 사실과 과연 사과를 하고 받으면 속마음이 풀어지는 거로구나 하는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웃해 있어 가슴에도 가까운 나라되라고
무궁화를 보다듬고 벚꽃을 보다듬네'
隣いて胸にも近き国なれと無窮花をめでてさくらもめでて
그러함에도 시인은 양국이 다투지 말고 가까웠으면, 하는 마음을 이렇게 드러냅니다.
끝의 '보다듬고' 로 표현된 메데떼めでて라는 어휘에는 보듬다 봐주다 인내하다 포용하다 용서하다 보기 싫어도 보고 끌어안다 사랑하다 라는 여러 풍성한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적확한 우리의 어휘를 못 찾은 저는 몇 단어를 돌아가며 쓰고 있습니다.
그 어휘를 선택한 어머니의 깊은 심정을 저는 이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강점기에 받은 차별과 상처, 국내 교육에서도 한글을 못 배운 아픔이 컸지만, 그 마음을 가지고 불화不和를 멈추기로, 제 눈에는 수줍어만 보이던 어머니가 한 순간 결단하는 용기를 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습니다.
결국은 마음이고 결국은 결단입니다.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하겠습니다.
이 어마한 쓰나미가 사라진다 해도, 앞으로 다신 그런 쓰나미가 없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부는 물론 국민 각자가 그런 마음을 가지기로 결단해야겠습니다.
점점 더 좁아져 가는 세계, 일본이 함께 미래를 살아가야 할 바로 옆 이웃인 것을 이제는 인정해야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