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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윤동주

  • 조회 1920
  • 2019.02.18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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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2  16      

 

 

이승신의 로 쓰는 컬쳐에세이

 

다시 윤동주

 

 

 

오늘은 시인 윤동주의 기일입니다.

1945년 해방이 되던 불과 몇 달 전인 2월 16일이니 27세요, 애타게 그리던 해방을 못 보고 갔으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최근 제가 몸 두었던 교토 동지사대학에서는 매해 이 날에 모임을 가지어 꼭 오라는 소식을 받았지만 못가고, 13일에 그가 다닌 연세대 모임을 갔습니다.

 

차가운 날씨, 연대 너른 캠퍼스 좋은 자리에 시비가 동지사 것보다 높이 서 있었고 그 비석 앞에 국화꽃 한 송이를 놓으며 절들을 했습니다. 바로 그 뒤로는 윤동주가 머물던 기숙사 건물이 있는데 그의 기념관을 만들기 위해 속을 다 털어 놓은 곳에서 추모식을 치루고는 백주년 기념 홀에서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인사말들이 있고 시낭독과 문학상을 주는 자리였습니다.

홍정선 교수의 '윤동주 강연'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 중 일 3국에서 다루는 윤동주의 모습이 다른 것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일본에 대한 저항을 강조하는 한국과, 가해자로서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일본, 윤동주에 대한 소유권을 강력히 내세우는 중국의 모습, 거기에는 미묘한 감정적 정치적 요소가 들어 있으며 그것이 객관성을 위협하거나 넘어서는 차이를 만들어 낸다고 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중국 조선족 문학이라고 주장하는데 당시에는 조선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직 없었고 그의 시 '별 헤는 밤'을 보면 '패경옥이라는 이국 소녀의 이름과' 라고 쓴 것에서 보이듯 그는 자신을 조선인(한국인) 으로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일본 당국이 윤동주에게 '불령선인' 이라는 레테를를 붙인 것에서 알 수 있듯 중국인이어서가 아니라 조선인이었기에 체포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관심있는 부분은 중국은 윤동주를 강한 반일의식이 있는 인물, 일본의 파시즘 체제에 강하게 맞섰던 사람으로 서술하며 윤동주의 서정적이고 내면적인 시에 적극적인 저항성을 부여하여 사회주의 국가의 모습을 보이며 그것도 '윤동주와 한국문학'을 쓴 일본 작가 '오오무라 마스오大村益夫'가 1985년 시인의 묘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윤동주를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반면 일본에서는 1950년 대에 윤동주가 소개되기 시작합니다. 1984년 이부키 고가 시집을 완역해 낸 후부터입니다. 그것이 일본에 관심의 계기를 마련했고 이어 대중적 인기를 자랑하는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子'가 1986년 '한글에로의 여행'이란 에세이집에 '윤동주' 라는 글을 실음으로 윤동주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고 일본 교과서에 그의 시가 수록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중국인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습니다.

윤동주라는 '인간의 모습'을 섬세하고 날카롭게 포착하는 모습입니다. 이부키 고의 번역집이 나올 무렵 오오무라 마스오도 윤동주에 지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만주에까지 가서 그의 묘소를 애써 찾아냈고, 다녔던 교회와 학교의 분위기를 보고 읽은 책의 종류와 내용을 밝혀냅니다.

 

이처럼 일본에서 윤동주에 관심을 가지는 방식은 한국이나 중국과는 많이 다릅니다. 다양한 개인적 관심으로 개인과 개인들이 동경 교토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 등에서 소모임을 가지고 세미나와 기념식을 열거나 시비를 세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현대에 와서 제가 아는 또 하나의 윤동주 연구자를 열거합니다.

타고 기치로 작가입니다. 그는 런던에서 NHK 특파원으로 있다가 윤동주의 '서시'를 보고 몰두하게 되고 그 영향으로 좋은 직장도 포기하고 작가의 길을 걷습니다. 10여 년에 걸쳐 NHK에 윤동주 다큐를 제작하자고 끈질기게 설득하여 만들어냈고, 시인이 한학기를 다닌 동지사대에 그 다큐를 보이며 윤동주 시비를 세워야 한다고 설득해 만들어냈고(1995), 윤동주의 마지막 사진을 발견하여 시인이 친구들과 서 있었던 자리, 우지에 또 하나의 시비를 세우게도 됩니다 (2017). 지난 해 시인의 탄생 백주년 때는 윤동주 자서전을 내기도 합니다.

 

교토조형예술대학 총장도 윤동주를 사랑하여 시인이 하숙했던 집을 사서 대학에 포함시키고는 그 앞에 시비를 세우고 올 해 기일에도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그러고 보면 속된 말로 '윤동주는 참 운이 좋고 재수가 지독히도 좋다'고 할 수 있으나 그가 사랑한 조국에서보다 훨씬 먼저 일본의 작가 시인 독자가 알아본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그러기까지 아무도 만나보지 못했으나 그의 시 행간에 영안靈眼으로나 보이는 시인의 순결함 순수함의 내면이 얼마나 깊었으면 요절한 후에라도 그런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나고야 마는 것일까,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과연 긴 것인가.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엔 밤비 속살거리는데

       등불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을 잡는다

 

       최초의 악수

 

 

 

  

 

  

시인의 추도식 및 기념식  - 연세대학 백주년 기념 홀  2019 2 13

 

시비  -  윤동주 하숙집터 앞  교토 2019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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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영상 -  이승신 기획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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