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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길

  • 조회 2744
  • 2017.05.10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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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야할 길을 나는 간다

 

묵직한 길 이름이다. 교토의 '철학의 길'.  입구 바위에 그렇게 새겨져 있다. 

 

긴가꾸지 銀閣寺 있는데서 시작하여 에이깐도永觀堂까지 수로를 따라 이어진 길이 2 키로, 이 산책로를 왼편에 흐르는 수로와 그 뒤켠의 숲을 바라보고 오른편의 예쁜 상점들을 보며 급하지 않게 죽 걸으면 한 50분이 걸린다. 

일본의 철학자 니시다 기따로 西田 畿多郞가 즐겨 산책했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교토를 찾는 사람들 거의가 한번은 들리는 산책길이다. 

교토에 공부하러 처음 도착해서는 집에서 은각사로 가는 방향을 몰라 택시를 탔으나 알고 보니 집 골목을 빠져나와 왼편으로 곧장 한 30분 걸으면 나오는 길이고 버스를 타도 가까운 거리였다.  

나는 심심하면 그 길을 걸었다. 아니 생각보다 공부가 많아 심심할 겨를은 없었고 적적해지면 걸었다고 해야 맞는 말일 것이다. 

봄에 한 2백년은 족히 넘을 벚나무들이 물길 따라 양 옆으로 길게 피어나면 수로의 물 아래로 늘어진 여린 꽃이 참으로 사랑스럽고 여름도 가을도, 교토에 한 겨울 한번이나 오는 함박눈이 내리는 때면 그것도 보기에 참 아까웠다. 

호타루 (반딧불)가 서식하던 곳이어 5, 6월이면 반딧불이 번창했다는 푯말이 있으나 내가 그 철에 가보지 못해서인지 이제는 사라진 건지 내 눈으로 여직 본 적은 없다. 

입구에서 왼편으로 오르는 골목은 유명 관광지 은각사 가는 길이어 도란도란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데 거기에 쌀밥이 유난히 맛있다고 선전하는 집에서 고슬한 밥에 구운 연어 한토막과 반찬 두어가지를 조금 들고는 내려와 우편으로 난 긴 '철학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거의 매해 봄이면 '철학의 길' 흐드러진 꽃무리를 바라보며 걷지만 언제 보아도 진력이 나지는 않는다. 긴 겨울 견디어내고 바라보아서인가, 희망이 있어~!!  연분홍 그 메세지를 산들산들 손짓하며 이 봄도 전해준다. 

꽃구경 물구경 사람 구경하며 한참을 걷다보면 중도에 잘 생긴 둥근 돌비석이 나온다. 이 길을 걷던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의 詩  "남은 남 나는 나, 어찌됬든 내가 가야할 길을 나는 간다" 가 새겨져 있다.  

더 걷다보면 다시 왼편으로 묵직한 숲이 나오고 수십미터 키의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데 왠지 공기 맛이 달라지고 영험한 분위기에 발을 멈추어 서게 된다. 여러 해 꽃과 물에 눈이 팔려 못 보던, 물에 접한 커다란 깊은 숲을 이제서야 첨 보는 듯 해, 해마다 보는 눈이 이렇게도 달라지는구나 하며 스스로 놀라게 된다. 

세계 각처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좁은 산책로를 걸으며 서로 눈을 마주치기도 하는데 그러면 서로의 마음을 안다는 듯 화안하게 웃는다. 다른 언어를 굳이 통역안해도 그 테마를 서로 알아듣는다. 간간이 이름모를 노란 꽃과 보라꽃이 발 아래 피어나고 2. 3 미터 좁은 수로에는 팔뚝보다 더 큰 새카만 물고기도 보인다. 작은 다리를 건너면 왼편으로 난 골목길에 찻집, 도자기 집이 나오고 그리로 들어가면 숲 속에 오래된 사찰도 숨겨져 있다. 

50여 분 걸어 수로의 거의 끝이 나오면 동지사 대학을 세운 '니지마 죠와 야에 죠의 묘지' 가 왼편으로 오른다는 팻말이 나오고 조금 더 걸으면 에이깐도永觀堂와 난젠지南禪寺가 나오는데 커다란 규모의 그 유명한 두 사찰을 들어가 한바퀴 다 돌아보고 나오면 아주 긴 산책을 한 셈이 된다.  

시간이 넉넉해 그 코스를 끝까지 다 걸을 수 있다면 그것은 행운이다.  

천년 전, 수 백년 전 지어진 건축과 기구도 제대로 없었을 때에 그것을 애써 지은 분들의 삶과 고뇌 그리고 그것을 천년동안 이어온 위대한 정신과 지금 사는 현세를 돌아보고 그 현세를 잇고 다음 세대에게 넘겨야 할 앞날을 바라보며 '철학의 길' 이름답게 생각에 잠겨 걸으면 주위의 자연과 물과 꽃과 바람과 바스락 나뭇잎 소리마저 메시지인 듯 가슴에 들려온다. 그것이 해지는 시간이라면 대숲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저편 하늘의 노을도 바라다 보인다. 

우편 길을 따라 있는 상점에 들어가 누군가 애써 섬세하고 정교하게 만든 반지 팔찌 지갑 손수건 부채 등 공예품을 바라보며 또 걷다가 교토의 유명한 화장품 회사 '요지야'よじや 에서 하는 찻집의 손질 잘 된 정원을 조용히 내다보며 선명한 초록빛 맛차 한잔 드는 여유를 가진다면 그것은 그 날이 자신의 속사람이 충분히 보다듬어진 날임에 틀림없다는 뜻일 수도 있다. 

오늘따라 '철학의 길'에 보이는 예쁜 집 하나가 내 집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비가 내린다

                        다시 피어난 이 계절 봄꽃 위에

                        흩날리는 내 머리결 위에

                        철학의 길 

                        천년의 고도 교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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