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상처

  • 조회 2640
  • 2017.03.03 16:44
  • 문서주소 - http://leesunshine.com/bbs/board.php?bo_table=Essay&wr_id=245

 

 

 

 

       겨울나무                                                                         2017  2  22 

 상  처

 

교토에 가게 되면 봄 가을이 됐든 여름 겨울이든 도시샤 대학 바로 앞의 고쇼, 옛 천왕의 어소 御所 들어가보게 된다.

그 곳은 입장료도 없고 문이 늘 열려있어 너른 궁을 의젓하게 걸어보기도 하지만 한적하고도 스케일 있는 그 궁터를 가로질러 그때마다 가려는 곳에서 가까운 문으로 나가려고 들어가기도 한다.

키가 훤칠하게 크고 수 백년은 됬음직한 아름드리 잘 생긴 나무들이 눈에 들어오고 한국의 궁에서도 그런 생각이 들지만, 교토의 고쇼에서도 잘 생기고 품위있어 보이는 나무를 보면 이들은 무슨 인연과 빽으로 이 궁터에 뿌리를 내리어 귀하게 대접을 받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철따라 여러 종류의 꽃이 어여삐 피어나고 우거진 푸른 잎의 여름이 싱그러우며 가을의 색색 단풍과 노오란 열매, 손바닥보다 훨씬 큰 은행잎도 눈에 띈다.

내가 처음 그 곳에 들어간 때는 4월 초, 사쿠라 철이었다. 20여 만평 넓디넓은 터의 북쪽 끝 도시샤 대학과 가까운 곳에 10여 그루의 땅까지 늘어진 기가막힌 시다레자쿠라 수양벚꽃을 만나게 된다. 세계의 벚꽃을 보았지만 이건 정말 특별한 꽃무리였다. 그 후 비교적 늦게 피어나는 그 사쿠라는 교토의 다른 곳들 꽃이 다 지고도 늦은 봄 화안한 자태로 나를 맞아 주었다.

그렇게 그것을 만나기 위해서는 4월 초가 제 철이다. 바라보는 이마다 얼굴이 밝아지고 아 아름답다고 찬양을 했다. 기인 겨울을 지나고 맞는 화사함에 움추려든 마음을 다시 펴고 서로를 미소로 바라다 본다. 몇 번을 이미 본 나는 여러 곳에서 온 사람들에게, 꽃 앞에서 만났다는 공통점 하나만으로 그 꽃의 특징과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을 설명해주며 좋은 위치에서 사진도 자진해 박아주었다. 나와 모든 이의 눈은 오로지 화사하면서도 수줍은 그 흐드러진 꽃에만 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꽃에서 물러나 나오다 두고 가기 아까워 뒤돌아 보는데 20여 미터 폭의 꽃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나무 밑둥의 흉한 상처가 눈에 들어 왔다. 뭉클한 그 순간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화려한 꽃 저 아래 울퉁불퉁 웅그러진 그 흉터를 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 여린 꽃들이 거저 피어난 것이 아니라는 걸 크게 깨우친 순간이다. 그 고생과 고통, 1년 중 겨우 며칠을 피워내기 위하여 연중 연일 해온 그의 희생과 헌신과 노동이 펀뜩 떠올랐다. 나는 되돌아가 관리 번호표가 붙어 있는 애처러운 그 몸통을 쓰다듬어 주고 껴안아 주었다.

봄 철에만 북쪽 끝의 그 꽃을 찾았는데 그 후 꽃과 잎이 다 떨어진 쓸쓸한 계절에도 나는 그를 찾았다. 전혀 다른 환경과 전혀 다른 모습이어 여긴가 어디였던가 두리번거리며 찾아야 했다. 이게 그 나무 맞나 하며 몇 번을 확인하기도 한다. 누구도 거기엔 없었다. 봄에 꽃이 져내리고 푸른 잎들이 무성히 나오고 그 싱그러움이 사라지면 벚나무는 다른 어떤 나무보다 가장 먼저 붉게 물이 든다. 그리고 다른 나무들이 물들기도 전에 잎을 다 떨구고는 나목이 된다. 거기에 커다란 동공같은 휑 뚫린 상처가 적나나하게 들어나게 되는 것이다.

한 겨울 목숨이 다한 것만 같은 그 나무는 목숨을 다하여 흙속 물을 빨아 올리고 생명을 키우고 있었다. 나는 그를 오랜만에 다시 쓰다듬어 주며 ' 잘 있었어? 다시 또 핑크 물꽃으로 피어나 세상을 놀래줄 거지? 긴 혹한을 견디어 낸 사람들에게 그렇게 또 희망을 줄 거지? 그렇지?' 하면 그 몸통에 바싹 갖다 댄 내 귀에 쏴쏴 - 물 오르는 소리로 그는 답한다.

누구에게나 고난은 있다. 누구에게나 상처는 있다.

상처는 아프다. 그러나 더한 생명으로 그것은 피어나고야 말 것이다. 저 품 넓은 벚나무처럼.


                    누군들 시련이 없겠는가

                    누군들 상처가 없겠는가

                    상처보다 더 큰 건 사랑


                    그것으로 상처를 덮는다

 

 

 

 

 

                                                    

겨울 벚나무  - 교토 고쇼 御所   2016  12

부활의 4월, 같은 벚나무 - 교토 고쇼  2015  4  7 


    옆으로 본 같은 벚꽃 하트  - 교토 고쇼   2015  4  7

 

 
               

 

 







추천 0 비추천 0

Pr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