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12
큰 나무
나는 커다란 나무를 좋아한다. 어린 나무가 자라 일정한 연륜을 지나면 하나의 생명으로 내게 다가온다.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도시샤 대학은 역사도 길지만 오랜 연륜의 커다란 나무들이 많이 있다. 학교를 척 들어서면 오래된 붉은 벽돌의 건물들이 눈에 띄지만 그 사이사이에 커다란 거목들이 눈에 들어온다. 적어도 서너명이 팔을 벌려야 둘러 쌓을 수 있을 굵은 나무둥치들이다.
매일 보아도 반갑고 새로워 나는 아침마다 교문에 들어서면 보이는 그에게 말로 인사를 하고 손을 갖다 댄다. 그러면 그도 나에게 화안한 미소를 보이며 나뭇잎을 흔들고 가지를 움찍거리며 뭐라고 말을 하는 듯 하다. 내 비록 하늘 나라와 인간 세계의 중간 쯤 되는 그 언어를 다 알아듣는 건 아니지만 어쩌다 눈치를 챌 때도 있어 좋아한다는 말에 미소로 답을 하기도 한다.
하루에도 몇 번을 잘 자라난 그 나무들을 지나며 잘 생긴 그 아름드리 나무를 올려다 본다. 내 키의 몇 배가 되고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태어난 그가 한참 어른으로 보이며 우러르게 된다. 그러면 그는 나를 아이 취급하듯 귀엽다며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준다.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 내 위의 어른이 다 가시어 내가 집안의 가장 어른인게 도저히 믿겨지지않고 조심스럽기만 한데 나를 보다듬어 주고 사랑과 이해와 포용을 베풀어주는 한참 어른이 내 곁에 있는 듯한 느낌이 참 좋다.
서울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큰 나무들이 있었다. 사직공원 대문 바로 곁에 5백년은 될 법한 굵은 나무에 어려서 학교 가는 아침마다 정을 들였었는데 어느 날 사라져 갔고 그 공원 한가운데에 있던 3 그루 느티나무 중 한그루 밑둥이 베여나가 낙망을 했었지만 집 뒤 배화여고 운동장 끝에 아름드리 크고 굵은 나무는 그대로이고 경복고 운동장 저 끝의 커다란 플라타나스도 내가 기대 온 나무이다.
Upstate 뉴욕집 뒷숲으로 이어지는 마당에 키 큰 나무 위를 기어 올라가면 편안한 Tree house가 있었고 오래 살았던 워싱턴 집 주위의 크고 풍성한 느티나무 elm tree에도 정을 들였었다
나무는 동물과 달리 자유로이 움직일 수가 없고 한 곳에만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이 가엾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내가 언제든 그 곳에 다가가 만져보고 올려다 보고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와 눈부신 잎사귀를 철마다 바라다보고 그리고 나를 보이는 것이 좋았다.
미국에서 귀국 후 처음 미국을 다시 방문했을 때가 떠오른다. 가까이 했던 지인들 만나는 것도 반가웠으나 집 뒷 숲의 내가 이름까지 지어 정겹게 불렀던 나무들, 동네 어귀에 그네가 매달려 있던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를 다시 마주하며 서로 기뻐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렇다. 연륜과 크기를 더한 나무는 분명히 살아 있는 생명으로 다가온다.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책을 가득 넣은 백팩을 메고 도시샤 교정에 들어서면 여기저기 내가 눈길주는 나무들이 반겨하고 하교할 때면 역시 그들이 캠퍼스에서 뛰듯 내게 다가와 늦은 나이에 오늘도 수고하고 고생 많이 했다고 팔을 뻗어 안아주는 듯하다.
매일 드나드는 도서관 바로 앞의 거목도 몸통에 녹빛 세월의 이끼를 벨벳처럼 입고 섰는데 밤 10시 도서관의 불이 꺼지고 내가 제일 늦게 문을 밀고 나오면 캠퍼스에 안개처럼 깔린 아름다운 조명과 함께 그 이끼나무가 수고했다고 '고꾸로사마데시다~!' 인사를 해준다. 그 감미로움에 절로 미소가 지어져 화답하고 그를 살짝 안아주며 큰 나무 잎사귀 너머의 짙푸른 하늘을 올려다 본다.
지나온 시간의 역사를 죄다 바라본 그 나무는 내가 이 다음에 가고도 다시 긴 시간을 그 자리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구사하며 펼쳐질 이 땅의 역사와 하늘의 역사를 두 눈뜨고 바라다 볼 것이다.
도시샤 대학 도서관 앞 녹빛 거목 - 2015 7 30 교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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