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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

  • 조회 3671
  • 2014.09.23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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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9   21 

 

 

                               산소 가는 길 

 

 

 

산소 가는 길 입구엔 한아름 보랏빛 들국화가 피어 있었다

 

                     그대는 가신 뒤 시인의 부군다워라  들국화에 묻혀서 

 

지금은 부모님이 산소 한 곳에 합장하고 계시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만 20년을

커다란 산에 아버지 혼자 누워 계셨다

그 가파른 산위에 있는 산소를 나는 어머니와 함께 올랐었다

 

차에서 내려 한참을 오르다 숨이 헉헉거릴 때 쯤이면 두 돌기둥과 산소봉이 드러난다

 

볼티모어 살 때에 잘 아는 댁에서 추수감사절 식사를 하는데 아버지의 소식이 서울에서 왔고 나는 그 집 부엌에서 전화를 받다가 그 바닥에 여러 시간 데굴데굴 굴렀다  내가 경험한 하늘 무너지는 첫 죽음이었다

 

31년 전 일이고 산소에 갈 제마다 그 안에 계시는 건 잠시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대여 나의 사랑의 깊이를 떠보시려 잠시 두 눈을 감으셨나요

 

아버지 계실 제도 어머니는 조용한 양처였고 가신 후에도 여러 면에서 지극정성 좋은 부인이었다

아버지 가시고 오래 입원을 하셨었지만 그 후엔 친구분에게 인수한 이천 옆 생극리 산소에 자주 가셨다. 아쉽고 한스러워 큰 산을 사 모셨지만 근처의 대지공원 묘지를 지나면 저렇게 여럿이 함께 한다면 평양 출신으로 만주 로스쿨을 나온 밝고 대륙적이고 진취적인 아버지는 서로 통성명하고 사귀어 외롭지 않으실텐데,  이것도 아쉽고 저것도 아쉬웠다

 

         살아남은 이의 마음을 달래줄 뿐 비석 앞뒤 새겨진 그대의 수많은 공적

 

                    산소의 잡초만 뽑노라  가신 님 위할 길 달리 없으니

 

       낙엽 물들이며 석양은 넘어가는데 다하지 못한 꿈 이루어지라고 바라보네

 

       그대가 좋아하는 꽃은 무엇일까 물어두지 않아 성묘갈 제마다 망서려지네 

 

       좋아하는 꽃이름 하나 모르면서 무엇을 안다고 하는가 그대 깊은 마음 속

 

 

섬세한 시인의 감성인가

싸온 인연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펼치며 간곡히 어머니는 기도를 했다

우리는 할 말이 없었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내색을 안하였고 나도 슬픔을 드러내지 않았다

흔히 산소 주위에 뿌리는 막걸리 대신 어머니는 아버지가 평소 좋아하시던 홍차를 산소위에 정성껏 뿌리셨다  그리고 이미 다듬어진 산소의 풀을 하릴없이 뽑았다

나는 그저 바라다만 보았다

 

            한번만이라도 그대여 눈을 떠봐요  성묘앞 한없이 펼쳐진 황금 들판 

 

           그대 옆에 나도 묻어달라고 울며 쓰러져 들꽃물이 든 하얀 소복치마

 

                 하늘 나라 어느 역에 내려야 그대 계신 곳 찾을 수 있을까

 

 

숨 다하는 순간까지 님을 그렸고 그 애절한 심정을 한 줄로 표현했다

거기에 스며든 마음은 바다 건너 이웃나라의 심금을 울렸다고 했다

 

이제는 함께 하실텐데  어머니 없이 오르는 산길은 적적하다

 

엄마는 무슨 꽃이 좋아?   

으음 ~

무궁화?  찔레꽃? 모란? 백합? 도라지? 들꽃?

말수가 적어진 말년의 어머니는 어느 것에나 음 ~ 이라고 했다

 

남들처럼 화려한 차례상도 아니고 어머니 따라가는 정성의 섬세한 상도 아닌, 아버지 좋아하신 신고 배와 두 분의 추억이 있는 하와이의 콩, 어머니가 늘 준비하셨던 홍차 그리고 끝내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시는 꽃이름도 깊은 속마음도 모른채 꽃집에서 망서리다 푸른 빛 들꽃 화분과 서양 릴리 꽃묶음을 이번엔 골랐다

 

봉위에 비죽비죽 솟은 풀을 말없이 뽑았고 어머니 하신대로 끓여 온 홍차를 찻잔에 담아 고루고루 그 위에 뿌렸다 

 

누구나 떠난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은 더 일찍 떠난다

 

 

       하루가 갈수록 부모님께 멀어지고 하루가 갈수록 부모님께 더 가까워지고

 

                                                                                             이승신

 

 

 

보랏빛 시 10수는 제가 펴낸 '찔레꽃 뾰족한 가시 위에 내리는 눈은 찔리지 않으려고 사뿐히 내리네' (샘터사 2002) 중 '생극리' 시편에서 고른 어머니의 한 줄 시입니다

                 

                


                        

 

 

 

 

생극리의 손호연 시인 어머니 산소의 비석  -   2014   9  11

 

생극리의 아버지 이윤모 대한민국 제1호 특허학 박사의 비석

 

아메리카 블루꽃과 스타게이저 릴리, 신고 배, 하외이 마카데미아 콩과 일본 단팥빵과 홍차 

 

그대는 가신 뒤 시인의 부군다워라  들국화에 묻혀서   -  손호연 시


산소의 잡초만 뽑노라  가신 님 위할 길 달리 없으니  - 손호연 시


어머니가 정성스레 뿌리시던 홍차를 이제는 어머니가 받는 차례  -  2014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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