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한 마을이나 도시의 전경을 바라다보기는 아 아름답다거나 좋다거나 추억이 깊지 않은 만큼 단순 세포적이나, 내 나라 나의 고향을 바라보거나 내려다보는 거엔 늘 만감이 서린다
인왕산을 오른다
오래 살아 온 필운동 집의 정든 우리 뒷마당 뒷동산이 길로 다 잘려 나가고 배화여고 배화여대 운동장이 뒷마당처럼 뒤에 있는데 거기서부터 인왕산은 이미 시작이 된다
실핏줄처럼 여기저기 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연결이 된, 조선 시대와 같은 역사의 이 경복궁 서촌 마을은 어디를 돌아도 서쪽 끝자락에 인왕산이 떡 버티고 있어 든든하다. 어느 길로 들어서도 결국은 인왕산에 가 닿는 것이다
나는 집 바로 옆 골목인 오래 된 배화여고 속으로 들어가 가파른 계단을 올라 언덕 위 학생들이 가끔 모여 앉아 수업을 하는 팔각정을 지나 산으로 가기도 하고 사직공원을 가로지르거나 공원 위 황학정 활터를 지나 오르기도 하고 북악 스카이웨이 쪽으로 올라가기도 하나 저 무악제에서 옥인동 청운동 끝까지 길게 늘어선 인왕산을 오르기는 실제 여러 길이 있다
초입만 들어서도 벌써 공기 맛이 달라지는데 보통 중턱 가까이의 샘터에서 물을 마시고 ‘나의 살던 고향’과 경복궁, 광화문, 시청 앞, 남산 등 시내 중심가와 산의 정상과 하늘을 바라보다 내려오는 것이 내 산책 코스의 하나이다
산행 친구들과 매주 북한산을 오르는데 이번엔 오랜만에 인왕산을 올랐다
새로 지은 부암동 윤동주 문학관에서 성곽을 끼고 오르니 생각보다 정상이 가까웠다 수 십년 오른 산이나 처음 밟는 코스이고 장희빈이 궁에서 쫓겨나 임금께 보이려고 자신의 붉은 치마를 펼쳤다는 커다란 치마 바위 정상을 찍고 그 옆의 또 다른 바위인 기차 바위를 오른 것이다
어려서 오른 인왕산은 온통 바위 투성이였는데 미국에서 돌아와 보니 신기하게도 그 단단한 바위 틈으로 나무와 풀들이 많이 나와 있어 놀랐고 지금도 계속 더 푸르러지고 있다
왜 기차 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는지 바로 앞에선 모르겠는데 아마도 멀리서 올려다보면 기차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수없이 보던 전망이어 기대안하고 올라 바라다보니 각도가 조금 다를 뿐인데 와아 이건 정말 또 다른 놀라움이다
아무리 자연이 좋다고 해도 100프로 자연만은 오래 가지 않는다. 너무 가까이 보는 대도시도 삶의 지저분함이 적나나하여 곧 물린다
330미터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에서 보이는 좌측의 북한산 큰 줄기, 거기에 구기동, 평창동 삶의 자락이 옹기종기 펼쳐지는데 바로 발 아래로 청와대, 경복궁, 우편으로는 시내 예의 고저층 빌딩군이 펼쳐지며 그 모든 삶과 인간이 만들어 낸 메가 도시를 북한산 인왕산 두 산자락이 파아란 하늘 아래 넉넉히 품어 안은 광경은 국내에서 바라 본 산 경치 중 단연 매력 1위다
나는 귀향 후 외국에서 온 많은 사람들을 우리 집과 인왕산 중턱으로 안내했었다
서울 체재 며칠에 그들이 보는 곳은 인사동 명동 면세점 불고기 때밀이 정도다
서울은 세계에 보기 드문 산의 도시인데 그들이 다니는 곳에선 산이 보이지 않는다 인왕산 중간 바위에서 바라보는 시내 파노라마 전경과 도시 한복판에 위치한 드높은 산에 한국을 새로이 보며 시인과 함께 한 산책 코스를 그들은 다시 오고 싶어 했다
그러나 기차 바위에서 내려다 본 전망은 정말로 기가 차서 내려오다 다시 본 그 중간의 전망과는 차이가 많이 나, 도중에 보는 사람마다 기차 바위까지 꼭 올라가 보시라고 홍보를 한다
후지산, 교토의 고야산, 뉴욕주 아팔라치아산, 알라스카의 맥켄리, 알프스, 몽블랑, 융푸라우, 시내산, 스위스의 이름 모를 산들을 내려다 보았지만 내 고향, 이 메트로폴리탄 시티 한복판의 기차 바위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자연과 우리가 이룬 역사의 조화가 실로 장관이다
내려다보이는 많은 동네와 골목골목마다에 서려 있는 그 굴곡진 역사와 나의 기억들로 약간의 편견이 끼어든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