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프랑스에서 바라보는 세월호
5월 내내 추웠습니다 프랑스의 기온이 아침 저녁으로 7도, 낮에 13도 15도였기 때문입니다
마음도 추웠습니다
세월호에 몸을 실었던 아이들에 가슴이 미어지고 아이를 길러본 엄마라면 그 엄마와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하며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슬픔과 비통한 마음 뿐입니다 인간이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 아니고 인재인 것이 더 원통하고 가슴 아픕니다
화창해지는 날, 가려던 봄 나들이와 소풍과 저녁 모임이 줄줄이 캔슬되었고 5월의 유럽 스케줄도 여간 망서려진 게 아닙니다
허나 오래 전 되어진 스케줄을 일일이 다 취소하기도 미안한 일이어 맘 굳게 먹고 종일을 비행기에서 보내다 내리니 서울은 날이 바뀌었는데 파리는 아직도 제 생일의 늦은 저녁입니다
큰 선체를 어떻게 잘라서라도 구출이 되려나 온 국민이 침을 삼키며 고대했고 늦어져 버리자 유가족은 물론 온 국민이 침통해지고 미디어는 온 종일 기울어진 배와 바람 찬 바다를 보여주었고 울적한 마음이 작은 나라에 급속히 전염되어 버려 그 뉴스를 안보게 되는 동안만이라도 그 울적감에서 조금 헤어나기를 바랬었는지도 모릅니다
프로방스의 스케줄에 그 대화는 없었으나 특유의 니스 불루 색감을 보아도 지중해를 바라보아도 무언가 연상이 되었고 아 바다는 지구에 하나로 다 연결이 되는 거로구나 하며 수평선 저 끝, 물 속에서 사투를 벌이며 시신이라도 구해내려 애쓰는 이들과 가슴을 조리며 애타하는 가족들 그리고 안타까워하는 이들의 마음이 절절해 옵니다
다시 파리에 돌아왔고 다른 테마로 만난 프랑스인이 한국의 세월호 사건을 끄집어내자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아직은 저만 알고 있는 것이고 이 지구 반대편 사람이 저에게 그 이야기를 꺼낼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후 테제베를 타고 1시간, 300 키로를 달려 평시 잘 아는 피터 현 선생 댁이 있는 르아르 밸리의 크리쎄 crissay 를 갔습니다 며칠 있는 동안 가까이 있는 이름있는 조각가 집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 곳은 오래 된 고성이 많은 아름다운 마을로 현선생 댁도 500년 된 돌집이지만 그 조각가 집도 500년 된 돌집을 손수 멋지게 수리하여 직접 만든 의자와 가구, 그린 그림과 조각들이 특이하고 예술적이어 두루 바라보다 응접실에 앉으니 그 미국 조각가에 어울리는 프랑스 부인이 가지 무침과 치즈와 정원에서 딴 호두를 그가 만든 테블에 펼치며 첫마디가 한국에서 일어난 참사 이야기였습니다 '아니 책임자들이 어찌 그리 무책임 할 수가 있어요? 세상에 그럴 수가 있어요?"
대도회지 파리는 그렇다치고 이 멀고도 작은, 인구 102명에 가로등이 없어 캄캄한 시골길을 달려간 곳에서도 지구 저편, 분단된 한 쪼끄만 나라의 일을 죄다 알고 있으니 어이 합니까
그제야 저도 4월 16일 세계로 나간 CNN으로 처음 보았던 생각이 납니다
그 높은 천장과 벽에 기발나게 붙친 예술 이야기, 장미가 아름다운 정원, 예술 작업을 하는 커다란 아틀리에 지은 이야기부터 할 줄 알았다가 어안이 벙벙해졌지만 변명 안하고 그저 가만히 다 받기로 이내 마음 먹었습니다 그건 우리가 밖에 나가면 당해야 하는 당연한 것입니다
욘사마 싸이 이야기 몽파르나스 기차역 중앙 천장 높이 삼성 스마트폰 광고 현수막이 18개나 내리 붙어 있는 걸 보며 으쓱해졌다면 이런 사건에는 우리 모두가 부끄러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남 탓 할 때가 아닙니다 제 탓이 아닌 척 할 수도 없습니다
미디어 인터넷 스마트폰 SNS 등으로 지구는 너무나 좁아졌고 세계 어느 나라 어느 깊은 산골, 시골, 어느 외딴 바닷가라도 다 하나가 되었음을 절감합니다
땅끝까지 소식이 바로 가는 시대 그것은 복음인가 고통인가 생각해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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